은행나무 골목 단상

찍어 놓을 것을 그랬다.
엄마 말씀엔 언제든 머리속에 사진을 찍어 놓으라고 하시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콱 찍어 놓을 것을 그랬다.
언제든 볼 수 있게 찍어 둘 것을 그랬다.
아빠랑 걷던 오월 초의 흐렸던 하늘 밑 초록잎 파릇한 은행나무가 그렇게 싱싱하던 민락동 빵집 앞 약국 옆, 그 길가는 언제가 되도록 보고싶을 것 같은데...
기억만으로는 끝까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뽀얗게 혹은 멋지게 기억을 더해서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나중에라도 다시 보고 그 기분은 기억이 안 나서 아쉬워지면 어쩌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달라서 놀라면 어쩌지.

머리속에 사진을 찍으라는 말이 왜 이번엔 이렇게 아쉬운거야

믿는 구석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기같은 이야기일까?
세상에 아빠가 없어서 믿을 구석이 없다는 것은 영 아기같은 것일까.
나는 그렇게 핑계를 대는 것일까. 결국 납득할 만 한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것일까.
늘 함께 계셨던 아빠의 사랑은 너무나 지혜롭고 큰 사랑이어서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어쩌면 더욱 세심할 지 모르는 사랑은 알 길이 없다. 영웅이었고,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그리고 마침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멋졌던 아빠는 기억속에 지나간 아빠가 되었다. 늘 마음속에 함께 있다는 말은 도저히 와 닿지 않아서 마음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에도 눈물이 맺힐 뿐이다. 늘 함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지금은 여기 없다는 말이 되어서 슬픈 마음이 한층 밖으로 튀어나올 뿐인 것이다. 하지못한 것이 아직 너무 많았지만, 함께 한 것도 너무 많아서 마음이 꽉 차 있는데도 마음이 비어있다.

믿는 구석이 아빠였다는 나는 이제는 등을 붙일 어느 구석도 없는 것 같아서 찬 바람이 등을 스치면 너무 시려워서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마치 겨울 바다에 빠져 온 등이 물에 젖은 채 집 한 채도 없는 해변에 선 사람같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떨다가 주저 앉을 것만 같은 사람. 아름다웠던 해변에는 눈이 내릴 뿐이다. 해변에는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고요가 가득하다. 거기에 나는 잠시 추운 땅에 몸을 기대고 눈이 오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눈이 오는 바다는 아름답지만 회색빛으로 색깔이 없는 추위만 가득하다. 매일 아침 노란 해가 뜨고 초록빛 바닷물과 하얀 파도가 찰싹이던 바다는 지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에 잠겨 색깔이 없이 쟃빛으로 가라앉았다. 그래도 해변을 떠나고 싶지 않은 나는 언제까지라도 이 바람이 부는 해변에 서 있겠지만 언젠가는 이 잿빛 해변에도 다시 해가 떠서, 내리는 눈이 시리지많은 않은 해변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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